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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걷기’는 이제 그만

2–3분
활동 링을 표시한 아이폰과 첫 걷기 운동 배지를 표시한 애플워치

애플워치는 한국에 처음 출시된 2015년 6월부터 썼다. 그때부터 찼으니 기록도 꽤 쌓였을 법한데, 정작 그 시절 데이터는 하나도 없다. 180일간의 활동 데이터가 필요한 애플 피트니스의 ‘추세’를 본 적도 없다. 대신 ‘첫 걷기(First Walk)’ 배지는 몇 번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나한테는 일종의 디지털 결벽증이 있다. 하루라도 활동 링 세 개를 다 채우지 못하면 덜 채운 링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 하루 때문에 그동안 쌓인 데이터까지 전부 지우려고 애플워치를 초기화했다. 심할 때는 거의 매일 그랬다. 초기화하고 밖에 나가 걸으면 워치는 어김없이 첫 걷기 배지를 줬다. 올해 건강검진이 끝나고 새 다짐을 한 10월 28일에도, 밤에 2.06km를 걷고 또 하나 받았다.

이번에는 ChatGPT 도움으로 하루 목표를 채우는 방법을 바꿔 봤다. 나는 항상 일에 쫓겨서든 그냥 게을러서든, 밤늦게야 워치를 들여다보고 남은 링을 채우려 안간힘을 쓰곤 했다. 그래서 평일 출근 시간을 고려해 아침 8시를 기준으로 움직이기 600kcal와 운동하기 30분을 다섯 몫으로 나눴다. 오전 11시까지 120kcal와 6분, 오후 2시까지 240kcal와 12분. 세 시간마다 이만큼씩 쌓아서 밤 11시까지 하루 목표를 채워 보자는 생각이다. ChatGPT가 정리해 주는 전날의 기록은 카드 이미지로 만들어, 하루에 한 장씩 수집하듯 모으고 있다.

밤에는 애플워치를 차고 자면서 수면을 기록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바디 체중계에 올라가고, 오므론 혈압계로 혈압을 잰다. 그러고 나서 샤워하는 동안 충전해 둔 워치를 손목에 찬다. 그렇게 보낸 10월의 마지막 나흘이다.

2026년 10월 28일 활동 카드
10월 28일
2026년 10월 29일 활동 카드
10월 29일
2026년 10월 30일 활동 카드
10월 30일
2026년 10월 31일 활동 카드
10월 31일

금요일에는 급한 보고서를 쓰느라 밤 11시까지 회사에 있었다. 저녁 8시까지 워치에 찍힌 운동 시간은 고작 5분. 그래도 목표는 채우고 싶어서 밤 9시 반쯤 잠깐 일어나 회사를 한 바퀴 걸었다. 1.64km를 걷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운동 시간 31분을 채웠다.

토요일에는 가족들과 동네 축제에 갔다. 따로 운동을 켤 일도 없이 함께 걸어 다니다 보니 10,902보였다. 나흘 중 가장 많이 걸었고, 링도 수월하게 채웠다. 기록상 금요일과 토요일의 운동 시간은 딱 1분 차이다. 내게 금요일은 보고서를 생각하며 회사 한 바퀴를 돈 날이고, 토요일은 가족들과 축제에 다녀온 날이다. 이렇게 적어 두니 나중에도 두 날을 기억할 수 있겠다.

11월에도 링을 꾸준히 채우고 싶다. 체중도 많이 줄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다 링 하나를 못 채우고 잠드는 날이 오더라도, 다음 날 아침엔 평소처럼 체중과 혈압을 재고 워치를 차고 싶다. 덜 채운 날도 내가 보낸 하루니까 그대로 남겨 두고. 이번에 애플워치에서 처음 보는 건 내 활동 추세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남기는 것도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다음에 또 초기화하고 싶어지면 이 글을 한 번 읽어 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그동안 쌓은 기록을 지우지 않고 계속 남겨 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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